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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 선풍기 왜 켜나, 입주민 민원과 현실 사이

by 인포나누리 202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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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과 입주민의 민원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면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반복되는 현상이 있다. 바로 “경비실 선풍기 좀 꺼달라”는 입주민의 민원이다. 고온의 좁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경비노동자가 잠시 선풍기를 켜거나 에어컨을 틀었을 뿐인데, 몇몇 입주민은 “공용 전기료가 올라간다”, “밤에 소음이 불쾌하다”, “내 돈으로 왜 켜냐”고 항의한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한 전기 사용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노동 인권, 공동체 갈등, 법적 권리, 냉방 인프라 정책 등 여러 사회 구조가 얽힌 복합적 이슈다. 이 글에서는 “왜 이런 민원이 반복되는가”, “경비원의 냉방 사용은 법적으로 어떤가”, “입주민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를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1. 반복되는 민원, 무엇이 문제인가

2024년 여름, 수도권 대단지 아파트에서 실제 발생한 민원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밤마다 선풍기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려와 시끄럽다.
  • 공용 전기료가 너무 올라간다. 누구 마음대로 에어컨을 켜나
  • 경비원이 낮에 졸고 있다. 냉방기기 틀고 노는 거 아니냐

이러한 민원은 다음 세 가지 배경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1. 공용 전기료에 대한 민감도: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관리비에 대한 부담이 높아지면서, 일부 입주민은 단 1KW의 전기 사용에도 과도한 예민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2. 노동자와 입주민의 ‘위계적’ 시선: 일부 주민은 경비원을 ‘공동체 일원’이 아니라 ‘내 돈으로 고용한 사람’이라 인식한다. 이런 왜곡된 시선은 노동 환경 개선보다 통제를 우선하게 만든다.
  3. 정보 부족과 소통 단절: 경비실에 얼마나 더운지, 냉방비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인지 모른 채, 막연한 ‘기분 나쁨’이나 ‘불편함’으로 민원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비실은 대부분 2~4㎡의 극소형 공간으로, 온실 효과로 인해 외부보다 평균 4~6도 더 높다. 유리문과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있어 통풍이 제한되고, 일부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고장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기도 하다.

2. 법적으로 경비원의 냉방 사용은 보장된 권리다

입주민이 경비노동자의 선풍기 또는 에어컨 사용을 제한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경비원의 냉방기기 사용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작업환경 보호’에 해당한다.

  •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사업주는 혹서기 작업환경에 대해 근로자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고용노동부 ‘폭염 대응 가이드라인’: 실내 근로자 역시 폭염 보호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밀폐 공간(경비실 등)은 냉방기 설치가 강력히 권장됨.
  • 근로기준법 제5조 및 제6조: 근로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인간다운 근무 환경을 보장받는다.
  • 지자체 조례: 일부 지자체는 아파트 관리주체에게 ‘경비실 냉난방기 설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민원 발생 시 입주자대표회의가 조율·중재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즉, 선풍기나 에어컨 사용은 근로자의 생존권과 연결된 최소한의 조치로, 이를 이유로 민원을 넣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실제로 일부 입주민의 지속적 항의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된 사례도 있다.

3. 에너지 소비 vs 인권

입주민의 주요 항의 논리는 “전기료 부담”이다. 그러나 실제 경비실 선풍기 및 냉방기 사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음과 같다.

  • 선풍기: 50W × 10시간 = 하루 약 0.5kWh → 월 약 15kWh
  • 에어컨(소형): 700W × 6시간 = 하루 약 4.2kWh → 월 약 130kWh

이는 1가구 기준 관리비로 환산해도 월 50~200원 수준이며, 한 단지 전체에서 분산하면 1세대당 월 5~20원 수준의 영향이다. 즉, 경비실 냉방 사용이 관리비에 미치는 영향은 실질적으로 미미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숫자보다 “어떤 시선으로 노동자를 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4. 입주민과 경비원이 갈등하지 않으려면

① 공동체 규칙을 만들자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 경비실 냉방기기 운영시간 정하기
  • 전력 사용량 투명하게 공개
  • 에너지 절감형 선풍기, 저소음 제품으로 교체
  • 냉방기기 예산 항목을 관리비 내 항목으로 명시

② 입주민 대상 인식 개선 안내

관리사무소는 폭염 속 노동환경, 경비원 근무 시간, 냉방 사용 관련 안내문을 게시할 수 있다. “경비원은 단순 감시자가 아니라, 입주민의 생활 안전을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 경비원 대상 커뮤니케이션 교육

일부 경비원이 주민 응대 시 친절하지 못한 경우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정기적인 서비스 교육, 민원 응대 매뉴얼도 필요하다. 존중은 상호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선풍기 바람 한 줄기에도 공동체의 품격이 담긴다

경비실의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다. 좁고 뜨거운 공간에서 12시간 이상을 버티며, 택배 분류, 주차 정리, 방범 순찰을 하는 경비원은 단지 고용된 관리 인력이 아니라, 공동주택 사회를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아파트는 ‘내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합체’이기도 하다. 냉방 하나에도 타인의 노동 조건을 배려하고, 민원 하나를 제기하기 전에 그 민원의 사회적 무게를 생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 선풍기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삶의 소리’일 수 있다.
  • 에어컨 한 대는 ‘전기 낭비’가 아니라 ‘존중의 상징’일 수 있다.
  • 그리고 작은 배려는, 더 나은 공동체로 가는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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