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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유기농 농산물들 (농가,폐업,전환)

by 인포나누리 2025.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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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유기물 농산물들

 

최근 유통 매대에서 유기농 표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상기후·인건비·인증비용이 겹치며 농가의 생산 리스크가 급증했고, 프리미엄은 축소됐다. 본 글은 농가의 현실, 폐업 압력의 원인, 지속가능한 전환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농가 현실: 유기농의 비용·리스크 구조

유기농 농가의 가장 큰 과제는 “수확량 변동성”과 “노동집약도”다. 합성농약·비료 사용이 제한되는 특성상 병해충이 기승을 부리는 해에는 방제가 쉽지 않고, 제초 또한 기계·수작업에 크게 의존한다. 폭염·집중호우·이상저온 등 기후 스트레스가 겹치면 생육이 밀리거나 꽃·과가 떨어지고, 수확기가 지연돼 상품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토양 유기물 관리, 피복, 윤작, 해충 유인식재 등 친환경 기술이 잘 갖춰져도, 기상 이변이 길어지면 품질 균일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유통은 균일성과 납기 준수가 생명인데, 유기농은 “작황 좋은 해에는 남고, 나쁜 해에는 모자라는” 톱니형 공급이 빈번해 판로 리스크가 커진다.

원가 측면에서 보면, 종자·유기질 비료·퇴비·미생물제·방충망·차광망·관수설비 등 고정·준고정비가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농약을 대신할 수 있는 자재도 저렴하지 않고, 적용 횟수나 작업 시간이 늘어 인건비가 상승한다. 검수·선별·세척·포장 단계에서의 손실률이 높아 “밭대기 기준 수확량”과 “실제 판매량” 사이의 괴리가 커진다. 특히 유기농은 잔류농약 검출 우려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체 선검사, 기록관리, 완충지대(완충구역) 유지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이 늘어난다.

매출 측면에서는 유기 프리미엄이 과거만큼 넉넉하지 않다. 대형 유통은 ‘합리적 가격의 친환경’ 콘셉트를 강화하면서 소매마진과 판촉비용을 이유로 산지 단가 인상을 꺼린다. 수입 유기농이 특정 품목에서 가격 기준을 낮추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농가가 체감하는 현실은 “더 까다롭게 만들고, 더 싸게 사려는 시장”이다. 그 사이에서 기후 리스크가 커질수록 현금흐름 변동성은 커지고 부채비율은 올라간다. 이처럼 농가가 감당하는 비용·리스크 구조의 경직성이, 매대에서 유기농이 사라지는 출발점이다.

폐업 압력: 인증·유통·가격의 삼중고

폐업 압력은 주로 세 갈래에서 온다. 첫째, 인증 부담이다. 초기·정기 심사에 대비한 포장재·자재 영수증 보관, 재배이력 기록, 토양·수질 검사, 경계 완충구역 유지 등은 손이 많이 간다. 작은 실수나 인접 타농가의 농약 비산만으로도 인증 보류·취소 리스크가 생긴다. 인증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비·검사비가 매년 누적되는데, 작황이 나쁜 해에는 그 비용이 매출 대비 비정상적으로 커진다. 둘째, 유통 구조의 집중화다. 대형 납품처는 물량 균일성과 계약 준수를 최우선으로 요구한다. 이상기후로 출하가 어그러지면 ‘미이행 페널티’나 반품·패널티가 발생하고, 납품단가 재협상에서도 산지 사정이 반영되기 어렵다. 현금 회전도 느리다. 어음·후지급 관행이 남아 있거나, 반품·감가로 정산액이 줄어들면 월별 현금흐름이 마이너스 전환되기 쉬운 구조다. 셋째, 가격의 경직성이다. 산지 원가는 오르지만 소비자 가격은 심리적 저항선이 강하다. 유기 프리미엄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면, 유통 단계에서의 판촉·로스 비용이 산지로 전가된다.

폐업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전조는 분명하다. 연속된 두세 시즌의 수확량 부진과 판매단가 하락, 반품률 상승, 재고로스 확대, 금융비용 증가, 연체·대환 빈도 증가가 그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조기 경보 체계”다. (1) 품목별 손익분기점(BEP) 재계산, (2) 계약별 페널티·반품 조건 재검토, (3) 작업시간·로스율·선별통과율 실측, (4) 월별 현금흐름(영업/투자/재무) 분해를 통해 적신호를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어서 “생산 축소·판로 전환·가격 재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폐업의 경사면을 늦출 수 있다. 중요 포인트는 ‘속도’다. 다음 재배 사이클이 시작되기 전에, 낮은 수익·높은 리스크 품목을 과감히 접고, 로스율이 낮고 선별 효율이 높은 품목으로 재편해야 한다.

전환 전략: 유기→친환경·재생농업·직거래로

전환은 포기와 동일하지 않다. 핵심은 “리스크 분산 + 프리미엄 유지 + 현금흐름 안정”의 삼각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첫째, 인증 스펙트럼을 유연하게 설계한다. 전면 유기를 고집하기보다, 일부 포장(圃場)은 유기 인증을 유지하고, 일부는 무농약·GAP 등 친환경 단계로 전환해 리스크를 분산한다. 이렇게 하면 기록·검사 부담과 생산 리스크를 분배하면서, 매대에서 ‘친환경 라인업’을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재생농업 도구를 체계화한다. 피복·멀칭·피복작물(클로버·라이곡 등)·윤작·저살수 점적관수·차광망·방충망·해충유인식재·토양유기물 증진·깊이갈이 제한 등은 이상기후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토양의 물·양분 보유력을 높인다. 방열·차광과 미세관수의 조합은 폭염기 낙과·열과를 줄이고, 바람막이·하우스 측창망 강화는 병해충 밀도를 낮춘다. 셋째, 판로를 다변화한다. 대형 납품처 의존도를 낮추고, CSA(정기구독 농산물 박스), 로컬푸드 직매장, 학교·단체 급식, 소형 리테일, 온라인 구독을 묶어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이때 가격은 고정가가 아니라 “원가연동·수급연동” 조항을 포함한 단가표로 합의하고, 이상기후 시 납품량·규격 허용치 완화의 ‘기상특약’을 계약서에 넣는다. 넷째, 수확 후 관리로 수익을 지킨다. 예냉(프리쿨링), 단계별 선별 기준, 호흡억제 포장(MAP) 등 기본기를 강화하면 반품률이 줄고, 규격외(못난이) 물량은 절임·건조·퓨레·소스 등 간단 가공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다섯째, 비용을 공동화한다. 인근 농가와 선별·포장 공동작업장, 공동 물류를 운영하면 단위비용을 낮출 수 있고, 그룹 인증을 통해 인증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여섯째, 데이터 기반 경영을 도입한다. 포장 단위 생육일지, 토양·엽분석, 미기상 센서, 출하시세 히스토리, 작업시간 타임스탬프를 모아 “품목별 손익 지도”를 만들고, 그 지도에 따라 파종·정식·수확 캘린더를 재설계한다. 일곱째, 금융·보장 장치를 챙긴다. 재해보험 가입, 정책자금·저리 운전자금 활용, 설비투자는 에너지·노동 절감 효과가 명확한 것(차광·관수·예냉)부터 단계적 집행이 원칙이다. 여덟째, 스토리텔링과 추적성을 강화한다. QR 기반 재배일지 공개, 체험형 팜 투어, 뉴스레터·SNS 구독 모델은 프리미엄을 설득하는 가장 저비용 채널이다.

전환의 체크리스트는 간단하다. (1) 손익 가장 나쁜 상위 20% 품목 즉시 축소, (2) CSA·직거래 100가구부터 시작하는 월구독 모델 론칭, (3) 공동 선별·공동 물류 파트너 확보, (4) 계약서에 원가연동·기상특약 삽입, (5) 데이터 수집·분석 체계 도입, (6) 인증 포트폴리오의 다층화다. 이 여섯 가지만 실행해도 현금흐름 변동이 줄고, 유기·친환경의 존재감을 매대에서 지킬 수 있다.

유기농이 사라지는 건 농가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구조 문제다. 폐업을 늦추는 해법은 선제적 전환과 판로 다변화, 그리고 데이터 기반의 비용 절감이다. 생산·판로·자금의 3축을 90일 계획으로 묶어 오늘부터 실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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