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에 진입한 젊은 의사들, 특히 여성 전공의들은 출산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전공의법’ 시행 이후 수련시간은 제한되었지만, 여전히 장시간 근무와 야간당직, 불투명한 휴직 제도는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이 글에서는 전공의 수련과정 속에서 출산·육아가 왜 어려운지, 제도적 한계와 현장의 목소리, 그리고 개선 방안을 다룬다.
전공의 수련제도 속 출산 현실
전공의 수련은 일반적인 직장과 다르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와 실제 현장의 실행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
수련기간과 임신·출산의 충돌
- 전공의는 진료보조와 교육 대상자로, 의료 노동과 학습을 병행함
- 레지던트 4년간 사실상 365일 풀타임 근무에 가까움
- 결혼과 출산 시기가 많은 여성 전공의의 생애주기와 겹치는 구조
제도적 장치 존재하지만 실효성 부족
- 전공의법상 출산휴가 90일, 육아휴직 1년이 가능
- 그러나 실제 사용률은 매우 낮으며, 휴직 사용 시 수련기간 연장, 케이스 부족 등의 현실적 문제 발생
- 동료 부담 증가와 교수 평가 등의 간접적 불이익 우려로 신청을 꺼림
병원과 수련위원회의 분위기
- 출산을 개인 이기심으로 간주하거나 "타이밍 맞추지 못한 개인 책임"으로 보는 인식 존재
- 임신 사실을 숨기거나 진료 중 유산을 겪는 전공의 사례 다수 보고됨
결국 많은 여성 전공의는 임신을 미루거나 출산을 포기함으로써 건강권과 생애권을 제한받고 있다.
육아와 병행하기 어려운 당직 중심 근무 시스템
전공의의 일상은 24시간 대응 가능한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육아와 병행이 어려운 구조이다.
야간당직과 주말근무는 일상
- 365일 중 100일 이상이 야간 또는 휴일 근무
- 병동콜, 응급콜, 수술 보조 등으로 인해 밤샘 반복
- 육아휴직 후 복귀해도 근무 패턴은 조정되지 않음
육아 도우미 및 가족 지원 부족
- 보육시설이나 가족 지원 체계 미비
- 배우자도 교대근무자인 경우 자녀 양육이 사실상 불가능
- 수면 부족으로 인한 과실 우려도 증가
병원 내 보육지원 제도 부족
- 일부 대학병원에만 어린이집이 존재하나, 야간 운영은 하지 않음
- 지방, 중소 수련병원은 관련 인프라 전무
결국, 육아는 전공의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 전공의의 이탈, 출산 포기, 의료현장의 젠더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제도는 있는데 왜 바뀌지 않을까?
‘수련기준’이 아닌 ‘수련문화’의 문제
- 이론상 휴직이 가능하지만, 수련 케이스 부족, 진료 누락 우려 등으로 실질적 사용이 어려움
- 복귀 후 ‘실력 부족’이라는 낙인도 우려됨
- 전공의법이 정한 근무시간 제한도 병원 자율 운영으로 무력화됨
지도교수와 관리자 인식 부족
- 모성보호와 생애권에 대한 기본 이해 부족
- 대체 인력 확보 어려움을 이유로 휴직 신청 반려 사례 존재
-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의료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
정부와 제도적 개입 부족
- 병원 인증평가에서 출산·육아 환경 항목 반영 비율 낮음
-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간 이원화된 수련 관리 체계
- 여성 전공의 대상 정책은 권고 수준에 머무름
현실 결과
- 여성 전공의 중도 포기율 증가
- 외과, 내과 등 체력 소모 큰 과는 여성 전공의 지원 감소
- 수련 종료 이후에도 출산 시기 놓치는 경우 많음
지속가능한 의료현장을 위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2025년 현재, 전공의 수련제도는 여전히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여성 전공의에게 출산과 육아는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사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의료 인력 유지, 직업 윤리 보장, 생애주기권 존중이라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다.
개선이 필요한 핵심 영역
- 출산휴직·육아휴직 사용 시 불이익 없는 수련 기준 마련
- 복귀 후 맞춤형 수련 일정 제공
- 수련병원 내 보육시설 확보 및 야간 운영 확대
- 병원 평가 항목에 ‘모성 보호’ 항목 반영 강화
- 지도교수 대상 젠더 감수성 교육 정례화
의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꿈을 미뤄야 한다면, 이미 그 사회의 의료 시스템은 위기 상태이다. 전공의 수련제도의 개혁은 단순한 여성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한 핵심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